<해병대 후임이 말하는 이용민 대대장>
이용민 중령의 아버지는 해병대다. 그의 형도 해병대다. 그는 해병대에 병으로 입대했다가 전역 후 다시 장교로 지원해 해병대로 돌아왔다. 그의 형도 해병대 제대 후 다시 장교로 해병대에 돌아왔다. ‘입대하는 꿈’을 악몽의 1순위로 말하는 군필자들에게 해병대의 ‘해병대 사랑’은 좀 유별한 데가 있다.
이용민 중령은 2003년 해병대 임관 후 2007년 백령도 배치를 받고 2년간 군생활을 했다. 포중대장으로 화포를 담당했고 중대원을 관리했다.
당시 비상상황이 많아 결혼도 1년 미뤘다. 당시 그는 군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사정으로 내 자리를 비우는 것보다 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충실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대장일 때도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두고 중대원들과 함께 했다. 특히 포병부대로서의 자부심이 있었다.
“화력의 핵심, 포병이 없으면 임무수행은 어렵고, 우리가 있어야 적과의 대치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해병으로 제대해 장교로 해병대에 돌아온 이용민 중령
그와 함께 생활한 병사들은 이용민 장교를 존경했다. 병 출신 장교는 해병들을 부하로만 여기지 않았다. 부대원들을 존중했고, 지휘관으로서 솔선수범했다.
‘책임은 내가 진다’는 마음으로 부대원들을 아꼈다.
바쁜 군생활 중에도 리더십 지도사, 분노조절교육사, 심리상담사 등의 자격증을 땄다.
대원들을 돕기 위해서다. 그와 함께 생활한 해병대 941기 이 씨는 “제대한 후에도 생각이 났을 정도로 인격적이 분이었다.
덕분에 해병대 생활이 자부심으로 남았다”고 했다.
그는 전역한 해병에게도 '잘 지내고 있느냐'며 먼저 새해 인사 메시지를 남길 정도로 다정했다.
이용민 중령은 대대장이 된 뒤에는 600명이 넘는 병사들의 이름을 모두 외웠다.
* 관련 기사 링크
https://topclass.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33320
* 9년 전 포신 폭발 사고 (제조사 결함 : 두산 DST)
: 어떠한 국가의 보상도 받지 않았으며,
국군수도병원에서 수술 및 치료 후
원대 복귀하여 묵묵히 임무 수행.
https://www.seoul.co.kr/news/society/accident/2015/05/21/20150521010019
* 결혼까지 미루며 해병대를 사랑한 이용민대위
https://www.haebyeong.com/free/7167#gsc.tab=0
*해병대 병 851기 : 해병대6여단 63대대 10중대
(고되기로 악명 높은 백령도 유격장, 유격조교)
* 해병대사관 89기 : 207명 입교, 147명 임관.
-해병대 사관후보생 제89기 기초군사훈련 수료.
(2003.06.19.)
* 2014년 필리핀 아우라 부대에 파견되어
6개월 간 재건 임무 수행.
* 아버지 : 해병대 병 185기.
-대한민국 해병대 관련 고서 최다 보유.
* 형 : 해병대 병 795기(해병대6여단 기갑) 전역 후
-동생 이용민 중령과 함께 해병대사관 89기 임관 후 근무.
* 해병대1사단 포7대대장 시절
600여 명의 해병대원들의 이름을 모두 외웠으며,
가장 먼저 출근하여 가장 늦게 퇴근한 지휘관.
* 해병대원 순직 사건 이후
공문서 없이 군수단에 파견되어 고초를 겪을 때
포7대대 대대장실 앞 화이트 보드판 앞에
포7대대 해병대원들이 쓴 글.
"대대장님 보고 싶습니다."
* 2024년 7월, 법사위 청문회에서의 발언
"책임 회피 할 생각 없어"
"전우를 지켜줘야 해병대이다"
출처: 해병대예비역연대 유튜브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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