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대량으로 발생한 몰락 양반들이
배가 고파서 족보를 팔아먹기 시작함.
갑오개혁 이후 누구나 성을 가지게 됨 관청 가서 걍 본인이 마음에 드는 성으로 등록 가능. 김해김씨가 많은 이유가 김해김씨 문중의 그 많은 논밭에서 일하던 노비들이 죄다 김해김씨로 등록했기 때문. 이제 상놈 집안이 하나도 없는 나라가 됨.
족보를 아예 날조해서 만들기 시작.
예전엔 끌려가서 쳐 맞았지만 이젠
사기 칠 용도만 아니면 뭐라고 쓰건
자기 마음임. 그리고 자식 손자한테
우리집안은 대대로 양반 가문이었다라고 가르침.
일제강점기 때는 양반집안이건 뭐건 법 앞에 다 똑같은 인간이라 어디어디 가문이다 이런 말 꺼낼 일 자체가 별로 없어짐.
어? 족보는 그렇다 쳐도 우리집은
선산이 있는데? 이건 양반가문이라는
확실한 증거 아님?
이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음.
그러나 한국 전쟁으로 인해
집성촌이고 뭐고 다 갈아 엎어지고 나서
휴전 후 웬 낯선 사람이 돈다발 들고
선산 지키고 있는 제일 큰 어르신한테
찾아오는 경우가 다반사
아아, 이 사람 전쟁 때 헤어진 우리 조카 맞아
라고 한마디 해주시면 으른이 그렇게 말하는데
문중의 누가 태클 걸겠음.
조선은 노예의 나라였음
아무 빈칸에다 이름 써 놓고 이대,삼대 지나 가서 우기면 되는건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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