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식, 쇼 라고 비판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현장 찾아가서 소외계층을 만나는 행동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생각되어 여기에 소개합니다.
<현장방문경청 프로젝트 - "당신 근처의 탄희, 당근탄희">
그동안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분들을 만나왔습니다. 현장을 방문해 여러분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느낀 점을 [탄희의 일기]로 연재합니다. 우리 근처의 이야기, 당신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탄희의 일기2]
김영미씨(가명)는 나를 꼭 만나보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집에 찾아갔을 때 그녀는 입을 잘 떼지 못했다.
감정이 북받치는지 중간중간에 눈물도 보였다. 영미씨가 한부모가 된 시점은 둘째를 임신했을 때였다.
큰아이는 4살이었고 아이 아빠의 빚을 잔뜩 떠안고 갈라섰다. 외롭게 둘째를 출산했다. 남들처럼 많은 축복을 받지는 못했지만, 영미씨에게 아이들은 가장 큰 기쁨이자 선물이었다.
현실은 냉혹했다. 당장 아이 아빠가 남긴 빚을 갚고 아이들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무슨 일이든 뛰어들어야 했다.
하지만 가족, 친지 도움받을 곳이 없어 아이 둘을 맡길 곳조차 없었다.
영미씨로서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불가능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출근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아 다니며 화장품공장, 식당, 정수기 판매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아이들과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렇게 10년을 보냈다.
정수기 판매를 하게 되면서, 살고있는 임대아파트 단지를 관리구역으로 할당받았다.
아침에 아이를 동네 공공도서관에 데려다 두고, 오전에 헐레벌떡 단지를 돌고는 했다.
점심때 도서관으로 뛰어와서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다시 도서관에 아이를 두고 오후 일을 마친 뒤, 도서관 문 닫기 전에 뛰어와서 아이들을 픽업하는 날들이었다.
아이들은 씩씩하게도 도서관이 좋다고 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오후에 일하는 시간을 줄였다.
실적이 안 나오니 회사에서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폭언과 막말도 있었지만 영미씨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참았다.
영미씨는 한 부모 가정이라고 부족한 아이로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금전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사랑이 부족한 아이로 키울 생각은 없었다. 온 힘을 다해서, 영미씨 본인이 부모에게 받은 사랑보다 더 많은 사랑을 쏟아부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고 방과 후에 다닐 수 있는 지역아동센터에 보내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상황이 조금은 나아지는 듯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이 터지면서 영미씨 가정의 상황은 급반전하게 되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작년 가을, 결국 영미씨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저축이 없던 영미씨는 수입이 끊기자 당장 대출이자도 낼 수 없게 되었다. 영미씨는 결국 아파트 보증금을 빼서 대출금을 갚고 임대아파트를 나왔다. 아이들과 갈 곳이 없어 막막했다.
정말 다행스럽게, 약간 떨어진 곳에 LH 매입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 기회라도 없었다면 세 식구 모두 거리에 나앉을 뻔했다.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아이들이 다니던 지역아동센터가 좀 멀어서 아이 둘은 이제 서로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다닌다. 아이들이 센터에 정이 들었다. 다른 지역아동센터에 빈자리가 없기도 하니 어차피 다른 선택지가 없다.
내년에는 큰아이가 중학생이 되는데, 영미씨는 둘째가 혼자 다닐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 가장 큰 걱정은 역시 생계문제다.
작년 가을부터, 6개월 째 수입이 없다. 대출한도 3,000만 원에 2,500만 원까지 차올랐다.
갑갑해서 숨이 안 쉬어진다. 갑자기 쓰러지는 일이 발생해 병원에 가보니 정밀검진을 해야 한다고 한다. 덜컥 겁이 난다.
최근 KDI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위기에서 고용 충격은 여성에게 집중되었다.
특히 보육시설과 학교가 문을 닫게 되고 돌봄공백이 발생하면서, 주 양육자인 여성들은 경제적/육체적/심리적으로 삼중고의 고통을 겪고 있다. 재난은 우리 사회 가장 약한 자들을 가장 매섭게 괴롭힌다.
IMF가 그랬고, 지금 코로나19가 그렇다. 이럴 때 약자들을 2중, 3중으로 보호해야 한다. 버리지 말고 같이 가야 한다. 사람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거니와, 그게 우리 공동체 전체를 위해서도 필수다. 겨울에 뿌리가 말라버리면 다시 봄이 와도 꽃을 피울 수 없다.
영미씨를 만나고 일주일이 지난 뒤, 시 공무원으로부터 급한대로 의료급여와 교육급여 신청절차를 밟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 가족이 겨울을 버텨내도록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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